황지연 | wawa(와와)
황지연 | wawa(와와)
#쌓음 #존재 #이유
불안정한 구조 위에 무언가를 계속 쌓아올리는 일은, 어쩌면 디자인을 계속해나가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믿음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쌓기와 연결의 반복 속에서 생겨납니다.
젠가처럼 위태롭게 쌓인 조형물은 ‘나’와 ‘믿음’의 형상화이며, 그 위를 회전하는 종이들은 ‘흐름’과 ‘연결’을 상징함과 동시에, 고립되어 있는 디자이너들이 서로 작업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기능을 표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외부의 흔들림에도 디자이너는 균형을 다시 맞추고, 또다시 쌓고, 계속 연결합니다.
이 불안한 반복 속에서도 ‘계속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결국 단단한 조형물이 되어 우리를 버티게 합니다. ‘쌓음의 이유, 존재의 이유’는 거창한 확신이 아닌, 매번 쌓고 다시 이어가며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합니다.
그 끈질긴 믿음의 반복을 이어가는 디자이너들의 노력을 믿습니다.
‘반발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위 ‘노인과 바다’라 불릴 만큼 따뜻한 도시, 부산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꽤 삭막했습니다. “서울 가야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괴감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반발심이 생기더라고요. ‘이 도시에도 나 같은 디자이너가 있을 텐데’, ‘나도 나만의 디자인 세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곳에서 나의 디자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디자인을 계속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디자인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계속 쌓아갑니다.
부산은 바다만큼이나, 거칠고도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낡은 간판, 진한 억양,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정 많음. 이곳의 풍경은 종종 제 작업에 영감을 던져줍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 특유의 정겨움이 제 작업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느껴질 때, 혹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반복될 때.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있는 이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건네며 함께 젠가를 쌓아나가고 싶습니다.
누구나 ‘쌓음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이 포스터를 보는 분들이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든 아니든, 우리가 자꾸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누군가에게서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의심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라고, 그 의심 속에서 쌓아 올린 것들이 결국은 '믿음'이라는 선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쌓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 디자인이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랍니다.